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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hang Story

 

☆★..임진왜란 격전지 골곡포(骨谷浦).. ★☆

삼천리 강산을 피로 물들이며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던 임진왜란.400여년 지난 오늘에도 치열했던 격전에서 숨져간 원호들이 고이 잠들지 못하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골곡포(骨谷浦)다. 자세한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여러 가지 방증을 통해 북구 송라면 화진리 화진해수욕장 일대가 바로 그 격전지인 것으로 추정할 수있다.

골곡포라 불리워 왔던 이곳 화진리 화진해수욕장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그 역사적 현장 골곡포에 잠든 원혼들의 외침을 그리고 뜨거운 함성을 들어보기 위해 화진해수욕장을 찾아가 보았다. 여라가지 역사적 기록과 고증을 더듬어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시 이곳에는 여단 규모로 추정되는 왜군 보급부대 또는 수송부대가 모래사장에 침입해 주둔하면서 이 지방의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때 송라찰방의 관원, 도이봉수대의 봉군, 그리고 이지역의 의병들이 합세하여 송라면 대전리 대동숲에 복병하며, 기회를 노려 오다가 야간에 주둔해 있던 왜군의 부대를 습격하여 이튿날 새벽까지 백병전으로 3전 3승의 치열한 혈전을 거듭했다. 이때 왜군과 더불어 아군도 상당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임진왜란 이후 청하군수가 이 지역에서 전사한 아군의위령제를 거행하였다는 말도 전해온다.

당시 대동품에 주둔한 아군 병사의 수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때 판 것으로 추정되는 천장(泉井)이 있어 주민들이 군정수(軍井水)라 부르기도 했으며, 이 곳의 물은 논 5~6마지기의 관개수로 사용되고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명천이었다고 알려져 왔었다.또한 왜군의 약탈 방화가 극심하여 군사상 중요한 서류를 감춰 두었다는 서장고라는 석굴이 있어 온 것은 왜군과의 격전을 암시해 주는 자료가 될 것 같다. 그리고 화진 백사장에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직후까지만해도 북풍이 강하게 불어 모래가 사방으로 날려진 후에 유골이 노출되고 활촉도 보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오래 동안 이곳 대진(大津)마을을 골곡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이 마을 북쪽 백사장에서 왜병과 우리측 군사 및 의병들이 대혈전을 벌여 그 죽은 자의 무덥이 썩은 숭이네고랑에 가득하여 강한 바람이 불어 흰모래가 이동할 때마다 유골들이 곳곳에서 노출된데 연유하여 붙여지게 된 것이라 한다.지금 이곳에는 소나무 숲이 빼곡이 우거져 있다. 이 소나무 숲은 6.25한국전쟁 이후에 사방사업으로 조성한 소나무 방풍림이다. 주민이자 향토사학자이기도 했던 故 권명술 옹이 증언했다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1929년 경까지만 해도 바람이 심하게 불면 화진 모래사장에 사구가 출토되곤 했고, 인골이 나둥굴었으며, 어떤 장소에는 인골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도 했고, 활촉도 간간이 발견됐다고 한다.또 조선총독부 발간의 책명 미상의 한 역사책에 화진 모래사장이 임진왜란 격전지로 기술된 것을 읽은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아군과 왜군은 구분하여 매장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는데, 이는 두개골과 화살촉, 대퇴부 그리고 작고 왜소했던 체격의 왜군과 골격이 컸던 아군의 체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란다.아무튼 일본의 침략사에는 나오지만 우리나라 정사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백병전으로 인해 아군의 지휘자가 도주했거나 사망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상부기관이나 정부에 보고조차 안 되었는지 모른다. 또 유족없는 서민층의 장졸들만 이 곳에 묻히고 오랜 세월동안 알려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말기에 만들어진 지도나 대동여지도에도 이 곳의 지명을 골곡포라는 포구 이름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그리고 향토사학자였던 故 권명술 옹이 남겼다는증언들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들어있다.
즉 일제시대 송라초등학교(당시 보통학교)교장으로 부임한 일본인 교장이 달밤에 제물을 준비하여 이 곳에서 통곡한 후 제사를 지내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하고 전해오는 내용이 사실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송라면 화진리 일대에는 해방풍 또는 갯방풍이라는 나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고급나물인데도 불구하고 먹지를 않는다고 한다. 이는 이 일대에서 시신이나 화살촉 등이 표출되기 때문이며, 혼. 피비린내가 나는 곳으로 경외심이나 협오감, 그리고 무덤 또는 전적지의 개념으로 마을 주민들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아무튼 이러한 여러 가지 방증과 기록 자료들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컨데, 화진리 화진해수욕장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로 골곡포로 불리워 오며, 수많은 왜병과 아군의 원혼들이 묻혀있었던 곳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당시 영일만권의 전쟁양상과 함께 이 고을 백성들의 솟구치는 조국애와 향토애도 실감할 수 있다.오늘날 지역의 한 단체인 노거수회(회장 이삼우)에서 최근 몇 년전부터 해마다 두 차례 원혼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호국영령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 있다. 앞으로 골곡포라 불려 왔던 이 곳을 해수욕장 외에 또 하나의 역사 테마공원 등으로 종성하여 관광자원화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즉, 아군과 왜군의 영혼이 함께 묻혀 잠들어 있는 원한의 골짜기 골곡포에 충혼탑이나 위령비를 세우고 해안 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일본 관광객의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 열린포항 2003년 겨울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