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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hang Story

☆★일월지 (日月池)(연오랑 세오녀)★☆
포항은 해맞이의고장이다. 일월신화를 창조한 땅이다.
오랜 문화적 전통의 시원(始原)이 여기서 발원됐고 그와 더불어 우리네 삶의 흐름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고장이다.
고려 충렬왕 2년(1285년) 일연이 펴낸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초창기 때부터 포항은 매우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일만은 신라의 포구로서 고대부터 이미 해외를 향해 문물의 교류가 빈번했던 곳이다.
삼국유사 첫 권에는 『연오랑(延烏郞) 세오녀(細烏女)』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신라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 4년(서기 157년)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연오랑이 바다에서 해초를 따고 있는데 바위 하나가 나타나더니 그를 태워 일본으로 가버렸다. 바닷가로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 또한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당도한다.
내외는 그곳 사람들에 의해 왕과 귀비로 받들어진다. 이때부터 신라에는 해와 달의 광채가 없어진다.
놀란 임금이 그 사연을 묻자, 『 해와 달의 정기인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버린 탓』이라고 신하는 대답한다. 부랴부랴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돌아오기를 청하나 연오랑은 고개를 저으며 『그 대신 귀비가 짠 비단을 줄 테니, 이것을 가지고 가 제사를 지내면 예전같이 될 것이다.』고 했다.
사신이 돌아와 그가 시킨 대로 했더니 과연 햇빛과 달빛이 되살아났다.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았으며,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불렀다. 그리고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懸)」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했다. 상고시대부터 큰 항구 또는 해돋이 고을이란 뜻으로 불리운 「근오지(斤烏支)」라는 포항의 옛 이름은 이때부터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 불리게 되었다.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당시의 영일만은 이미 바다를 이용한 국제적 교류가 빈번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연오랑과 세오녀는 해외로 진출한 이민 1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일본에 가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문화를 일본에 전파한 실증이 아닐까. 어쨌거나 포항은 그처럼 고대적 신화를 창조한 땅이며 어염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렇게 귀중한 역사적 실증이 탄생한 곳이 바로 동해면 도구동 언저리에 있는 일월연못(日月池)이다.
이는 삼국유사에 이어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에 자시히 기록돼 있다.  일월지는 천제지(天祭池) 또는 광복지(光復池), [해달못]이라 불려지도 했다.
신라시대로부터 「해달못」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가 들어와서부터 한자식으로 부르게 되어 일월지라 부르고 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못이라 하여 「천제지(天祭池)」. 해와 달의 빛이 다시 돌아왔다고 「광복지(光復池)」라 불러온 것이라 전해진다.
일제가 1910년 우리나라를 침범, 이 일대를 점령해 일본군부대를 주둔시키고는 이곳에 있었던 천제당(天祭堂)이란 사당(祠堂)과 고려말 공양왕 때 세운 「일월사적비」를 파괴해 버렸다.
그 이유인즉 일월지 사적비명에 일본왕실 사람은 모두다 연오랑의 후예라고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천제당(天祭堂)에 대한 내력을 살펴보면, 천제당은 신라시대로부터 내려온 사당으로 「일월지」의 관개수(灌漑水)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는데 그 사당에 모신 신위(神位)는 어떤 신위인지 기록은 없으나 연오랑 세오녀의 신위라고 구전되고 있다.
일월지가 위치한 곳은 해방후 미군부대가 부대기지(해병)를 일본군으로부터 접수되고 그 후 우리 군(해병사단)에 인계되어 오늘에 이르지만 아쉽게도 해병부대 영내에 있어 시민들이 접근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주변에는 일월지와 관련된 지역도 많다. 해와 달이 빛을 다시 찾았을 때 빛이 가운데 비친 곳이 「중명리(中明理)」, 빛을 다시 찾아 온 천지가 밝아졌다는 「세계리(世界理)」등이다.
1983년 당시 영일군은 지역민들의 뜻을 모아 일월신제를 올리고 이어 85년에는 현 동해면사무소 뒤편에 일월사당을 지어 일월신을 모시고 있으며 92년에는 일월지 둑 언저리에 일월사적비도 복원했다. 83년 이후 매년 한차례씩 열리는 문화축제(영일만축제)때는 시민들 중에 가장 충직하고 부부간 금슬이 좋은 젊은 부부를 연오랑 세오녀로 뽑아 그 부부와 함께 포항시장은 직접 일월사당에 모셔져 있는 일월신에게 제를 올리고 있다.
일월지는 현재 해병사단 영내에 있다. 그동안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그 흔적은 지금까지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지난해부터 해병사단의 각별한 노력에 의해 일월지 일원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또한 포항시와 해병사단이 공동으로 성역화(聖域化)사업을 추진하고 신라때부터 하늘에 제를 올렸던 천제당(天祭堂) 복원도 계획중이다.
이렇게 일월지는 열림의 개척정신과 미래지향적인 포항사람들의 고유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며, 이곳을 성스러운 장소로 복원관리하는 일은 포항사람들의 긍지와 사상의 맥을 잇는 과업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곳을 포항정신이 깃든 성지로 받드는 것은 포항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문화운동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