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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뿌리를 찾아서      林氏유래      우리집뿌리      제사 상식      촌수와 호칭     우리집 계촌표     나주林氏(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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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뿌리 찾아서 머리말    2. 林氏원조   3.시조본관  4.나주林氏  5. 파(派)란  6.본관(本貫)의 유래 - }


 1.뿌리 찾아서 머리말


  * 장기입향 : 고려시대 태조13년 (서기930년) 장기현 .. 현종 9년 (서기1018년) 경주 부에 내속 되었으며
    이때 나주에서 경주 부윤공으로 입성 한 것으로 추정.


* 우리의 원조 유래는 4~5백년전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으나 세대가 아주 멀고 하여 문적을 증거할 수 없음을 밝힘니다. 하여 확실한 문적에 의한내용 어느정도의 신빙성 있는 기록에의한 자료에 의해서 즉 2 ~ 3 백년전 내용을 기술합니다. 안타깝게 우리집 뿌리가 정자공파, 아니면 절도공파 일 것이다로 추정할 수 있으나 미확인 사항임을 밝힘니다. 그러므로 여러정황 검토 하여 정자공파 로 추정이 됨니다. 본 은 나주입니다만 나주에서 고향인 장기(250년이전내용)로 입향한 내용을 찾을수 없었으며 장기입향확인을 제1세 (포항1세) 로 하여 [1750년(24세손)]하여 2005년 제9세(32세손) 까지 기록 정리합니다만 앞으로 계속 추가 자료 정보 있을시 수정 할 것입니다. .

 

      2. 원조     <나주임씨는 고려때 대장군을 지낸 임비[林庇]를 시조로 하고있다.>

 

    3. 시조본관

임씨는 문헌에는 216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나주 평택을 제외한 나머지 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나주 임씨는 고려 대장군 임비를 원조로 하고 있으며 그 후손 임탁이 해남현무로 있다가 이성계가 개국하자 사직하고 회진으로 돌아가 세거하면서 본관을 회진으로 하였다가 그후 회진이 나주에 속해짐으로써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평택임씨는 임씨의 도시조 임팔급을 시조로 하고 있다. 임팔급은 당나라 문종 때 학림학사로서 동래하여 팽성(평택의 별호)용주방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평택으로 하였고, 그후 유구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양, 선산, 은진, 회성, 장흥, 진주, 옥강, 익산, 울진, 예천, 부안, 순창, 경주, 회양,밀양, 안의, 임천, 임파, 전주, 보성, 안동, 임하 등등으로 분적되었으나 다같이 임팔급의 후예라 하며 현재 환적을 서두르고 있다. ★★]

 

   4.나주(羅州) 임씨(林氏)

 

임비 이전의 상계는 유원하고 문적과 고종이 유전되어 소목계통을 밝히지 못하고 비를 원조로 하여 연면 계승하고 있다. 그는 고려조에 벼슬하여

1281년(충렬왕7) 왕을 호종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시종보좌공신 2등에 책록되고 철권을 하사 받았으며 대장군 충청도지휘사판재사사에 이르렀고 9세손 탁이 해남감무를 지내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불복치사하고 회진으로 돌아가 세거하였으므로 본관을 회진으로 하였는데 그후 회진현이 나주에 속해짐에 따라 나주에 고쳤다. 그 발전 과정을 상고하면 탁의 7세손 붕에서 기틀을 잡아 그 아들 익(장수공) 복(정자공) 진(절도공) 몽(첨지중추)이 현달함으로 가세가 크게 번성하여 장수공파(파조익) 정자공파(복) 절도공파(진) 첨자공파(몽)로 각각 분파되었고 그 밖에 탁의 손 유소에서 비롯되는 도정공파가 있어 5파로 대별되어 있다.

    5. 파(派)란

 

   쉽게 말하면 다같은 나주 임씨 이지만 어떤 어른이 크게 이름을 떨치셨다던 지 어느 어른 자손들의    수가 월등하게  많을 때 자기 소속을  구분하기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나주임 씨는 크게 장수공파, 정자공파,절도공파,도정공파 로 나눈다

 

  *  장수공파(長水公派)

  16세 휘익(益)할아버지가 장수현감을 지내셔서 붙여진 것으로 큰집이라하여 장(長)파라고도한다.

 

  *  정자공파(正字公派)

  16세로 휘익(益)의 아우 휘복(復)으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지내셨기 붙여진 것으로  둘째집이라 고하여 중(中)파라고도 한다.

 

  *  절도공파(節都公派)

   16세로 휘복(復)의 아우로 휘진(晉)으로 병마수군 절도사(兵馬水軍節都使)를 지내셨기로 붙여진

   것으로 끝에 집이라 하여계(季)파라 고도한다.

 

  *   도정공파(都正公派)

  11세휘유소(有巢)화산도정(花山都正)의 손들을 말한다 주로 함양에 많이 살고 노안에서 산다.

 

  본관(本貫)또는 관향(貫鄕)이라고도 하고 쉬운말로 본(本)이라고도 한다.

  우리 민족(民族) 각성씨(各姓氏)의 본관 유래(由來)는 시조(始祖)가 태어난 곳 또는 시조로부터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世居地)의 지연(地緣)을 따라 이루어져 있다.

  

    6.본관(本貫)의 유래

 

  나주임씨의 본관의 유래는 고려말(高麗末) 72현(七十二賢) 가운데 한분이신 감무공(監務公) 휘 탁(卓)이불 사이군(不思二君)의 절의(節義)를 굳게

  지키시어 부조현(不朝峴)에 올라 뜻을 밝히시고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셨다.

  그후 태조대왕(太祖大王)의 여러번 부름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으시고 드디어 낙남(落南)하시어 회진(會津) 에 은둔 하시고 종신(終身)토록 나오시지

  않으셨다,

  이로부터 자손들이 세거(世居)하게 됨으로써본관(本貫)을 회진(會津)으로 하였다. 회진현이 나주목(羅州牧) 에 속하게 됨으로 

  경신년 (庚辛:1800年)에 악정공(藥正公)이 문중(門中)의 의결(議決)을 얻어 본관을 나주(羅州)로 개칭하였다. 문헌상에 본관이 회진으로 기록 

  있음은 개칭전의 기록들은 개칭 후의 기록 모두 나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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